생명을 지키는 사람들

청남둠벙공동체 임종래 · 구미숙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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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품는 곳, 청남둠벙공동체

청남둠벙공동체. 활발한 교류활동으로 이미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청남둠벙공동체 도농교류 위원인 임종래(53세) 생산자와 마주하자마자 그 뜻을 물었다. “둠벙요? 웅덩이라는 뜻이에요. 여기선 대청호가 둠벙의 역할을 하는데, 수산물부터 논까지 온갖 생명들을 품고 기르는 생명의 기점이죠.” 마침 점식식사에 올라온 민물생선도 대청호 둠벙 출신이라고 하니 생명의 기점이라는 말이 더욱 와 닿는다. “저희 공동체는 2009년에 설립돼서 지금은 대청호 부근의 15개 가구가 양파, 토종고추, 옥수수, 조선호박, 토종 벼 등을 재배하고 있어요. 귀농한 예비생산자들도 함께하고 있죠.” 과연 생산물도 사람도 쑥쑥 자라나는 곳이다.

전화번호부에서 만난 한살림

한살림과의 첫 만남까지는 20년을 되돌아갔다.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했지만 뒤늦게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고 1996년 누나가 살던 지역에 정착하기로 했다. “애들 유치원 다닐 즈음이었던 거 같아요. 1천 평 밭에 비닐피복을 하고 콩을 심는데 얼마나 힘들고 더디던지 지금도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좋은 씨앗과 농사의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좋은 씨앗 찾기에 나서던 중, 전화부의 ‘종자’ 카테고리 아래서 한살림을 만났다. “한살림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는데 한 눈에 이름이 참 맘에 들었어요. 바로 전화를 걸어 상무님을 만났는데 신기하게도 뜻이 잘 통하더라고요. 그 계기로 한살림 농사꾼이 되었죠.”

쉬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다

지난 20년간 그는 발 벗고 공동체운동, 연대활동을 일궈왔다. 농사에서도 늘 새로운 도전을 해왔다고 한다. “겨울철 마을경제를 위해 미나리재배도 시도하고, 도시사람들 체험을 위해 산도라지와 더덕도 심어봤고, 토종벼 등 토종종자 농사도 시도해오고 있어요. 올해는 비닐하우스에서만 기르던 방울토마토를 노지재배로 시도 해봤는데, 이 농사가 되니까 마을사람들이 다 놀라서 보고 가요. 내년엔 다양한 생물이 공존하는 생물다양성 논농사도 해볼 예정이에요.” 농사도 나름 전문직(?)이라 한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은 노하우로 점차 안정을 찾기 마련인데, 늘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구나 고생 끝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면 다른 생산자에게 전수하고 또 다른 농사에 나선다니,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는 것일까. “힘들죠. 하지만 전 성공의 잣대가 남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 수확물이많고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인 사람도 있고, 저는 유기농에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 성공했다 생각하거든요. 아무도 하지 못했던 농사에 도전해서 알게 된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내가 농사지은 곳에 재잘재잘 체험하러 온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사는 맛이 느껴져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리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곁에 앉은 아내 구미숙 생산자(48세)에게 향했다. “고생많이 했죠. 올해도 노지토마토를 기르면서 이 고랑에서 많이 울었어요. 토마토는 이슬이나 비가 닿으면 표면이 터지는데, 저는 마음이 급한 반면 바깥양반은 늘 잘 될거라고 지켜보거든요. 활동하는 일이 많아서 바쁘기도 하고요. 힘들기는 해도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만하라고는 못 하죠.” 뜻을 헤아리며 묵묵히 내조하는 아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임종래 님이 있고, 뜻을 잃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해주는 생산자가 있어 지금의 한살림이 있다.

생명과 조화로운 삶의 길

인터뷰를 마치고 청주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딸아이도 농가로 시집가서 축산을 해요. 이 녀석도 어릴 땐 엄마, 아빠처럼 안 살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저와 같이 생명과 조화로운 삶의 길을 가고 있는 걸 보면 제가 허투루 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조카도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배우기 위해 임종래 생산자네로 출근을 한단다. 이젠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임종래 생산자.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그는 오늘도 내일 토종고추밭에서 임종래·구미숙 생산자 부부 마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노지 방울토마토 도 평생 새롭게 농사 중이다.

-글 / 이정하 홍보위원